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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크레존
  • 등록일2016.02.17
  • 조회수916

 

99권을 빌려주는 도서관 

 

 

사진1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다운타운에 위치한 산타바바라 공공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조용하고 안정감 있는데다 아래층에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도 있어 나와 딸 모두에게 만족스럽다. 토요일마다 다른 별 일이 없으면 기내용 가방을 끌고 딸과 이곳에 오는 것이 기쁨이 되었다. 도서관에 웬 기내용 가방이냐고? 빌려온 책을 반납하고 빌려갈 책을 담기 위함이다.

 

처음에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몇 권 대출할 수 있나요?”

“99권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뭔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고 다시한번 말해달라고 하자 담당자는 웃으면서 한 번에 99권을 빌릴 수 있고, 기한은 3주이며, 원한다면 인터넷으로 3번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용 비디오, 잡지, 책 모두 포함해서 99권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 책을 요청하지 않으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세 번까지 연장되었다. 여하튼 미국의 스케일은 알아줘야 한다. 다들 99권씩 빌려 가면 도서관이 유지가 될까 잠시 걱정했으나 그럴 염려는 없는 듯 하다. 도서관 서고는 늘 책들로 빽빽이 차 있다. 바닷물을 양동이로 퍼서 모래장난을 하면서 바닷물이 다 없어지면 어쩌지? 걱정하는 격이었다. 하긴 아무리 빌리고 싶은 책들을 실컷 담아도 99권을 빌린 적은 없고, 평균 25권 정도를 빌리게 되는 것 같다. 뭐 매주 오는데다 너무 많이 빌리면 무거우니까 이 정도만 빌리자, 라는 기분이 되는 것 같다. 빌리고 반납하는 것도 모두 자동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몇몇 도서관에서 이미 보고 참 신기했던 것인데, 이곳에서도 대출 기계에 대출 카드 바코드를 댄 후 ‘check out’ 버튼을 누른 다음 빌리고 싶은 책을 그냥 모두 겹쳐 올려놓으면 이 똑똑한 기계가 촥촥촥촥 인식을 한다. 다음은 대출 리스트 이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반납은 더 간편하다. 반납대 구멍에 대출한 책을 밀어 넣으면 끝.

 

 

미국에 와서 아이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고무적인 것은 책읽기를 휴식처럼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유 시간에 자연스럽게 TV도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쓱쓱 그리기도 하는 것처럼, 스스로 책을 꺼내 큰 소리로 읽기도 하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즐기기도 한다. 우리가 거주하는 미국의 아파트에는 ‘작은 도서관’이라고 해서 비둘기 집 같은 곳에 다 읽은 책들을 기증받아 자유롭게 빌려가고 돌려줄 수 있게 하는 장소가 있다. 저녁 먹고 산책을 하면서 그곳을 지나가면, 아이는 얼굴을 파묻고 신중히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가 열 권 쯤 고르며 “이 책 다 읽고 싶다”는 책 욕심을 부리곤 한다. 한국의 아파트에는 ‘책 읽는 송파’라는 슬로건 하에 책이 한 가득 담긴 이런 비둘기 집 도서관이 길 가는 곳마다 열 군데쯤 있다. 그런데도 한 번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딸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렇게 기적처럼 기쁜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모르는 단어도 많을 테고 내용 파악이 완전히 되지도 않을 텐데도 영어로 된 책을 읽으며 이렇게 즐거워하게 되다니 말이다. 사실 한국의 독서열기와 독서환경은 이곳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소아과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준다. 아무리 아이가 열이 펄펄 끓고 1초에 한 번씩 기침을 해대도 엄마는 성우와 같은 목소리로 동화구연을 펼친다. 대형서점에 가봐도 어린이 코너에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들로 넘쳐난다.

 

한 번은 교보문고에서 아이랑 책을 고르고 있는데 유치원생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가 큰 소리로 친절하고 호기롭게

 

“자, 여기서 네가 꼭 읽고 싶은 책을 두 권 골라. 아빠가 사줄게.” 했다.

 

신이 난 아이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참을 하더니 책 두 권을 들고 왔다. 그걸 본 이 아빠의 신경질적인 반응,

 

“아휴, 뭐 이런 쓸 데 없는 책을 사려고 그래. 다시 골라 와.”

 

잘 기억은 안나지만 파워 레인저 등의 책을 들고 왔던 것 같다. 이 아빠와 아이의 심정이 모두 십분 이해되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쓸 데 없는’ 이라는 말은 자제하셨어야 했지만.

 

여느 부모처럼 나도 한국에서 아무리 바빠도 아이의 독서교육 만큼은 신경을 쓰려고 했다. 자기 전에 침대에서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교보문고도 자주 데려가고, 읽고 싶다고 하는 책은 아낌없이 사주었다. 우리 동네의 훌륭한 어린이 도서관과 돈가스가 맛있는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일반도서관에도 데려갔다. 아이의 학교 도서관도 훌륭했다. 고전부터 신간까지, 한국책에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책, 영어책까지 없는 게 없었다. 학교에서 독서를 장려한 것은 물론이었다. 다독상도 주고, 독서 감상화 대회도 열고, ERP라고 해서 영어책을 읽고 문제를 풀고 많은 포인트가 쌓이면 한 달마다 상을 주었다. 아이는 그런 것도 열심히 하고, 상도 받았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책을 즐긴다기보다는 의무감으로 읽는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딸이 미국에서 책읽기를 즐기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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