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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교육 이야기

‘우리’의 유전자에는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
작성자c*********1 조회16
등록일2024-04-25

이송교 <홍익대학교 기초과학과>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유명해진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이 있다. 딱 들었을 때 약한 자는 도태되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느끼게 한다. 수십 년 동안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어감도 마찬가지다. 생명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생각하며, 남과 경쟁하며 살아남았다는 인식을 남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원래 다윈이나 도킨스가 의도했던 바와 다르다.

우리는 분류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다. 중학교 과학 시간에 종, 속, 과, 목, 강, 문, 계라는 분류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종은 가장 좁은 범위의 분류 체계이고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넓어진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람 속(호모)이라는 조금 더 큰 범주에 속하는 하나의 종이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 종도 지구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전부 멸종하고, 지금은 우리만 살아남았다.

 

[인류의 진화]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하게 살아남아 오늘날 지구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종보다 더 강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종보다 더 똑똑했기 때문일까?

다른 종을 잘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0만 년 전에 등장해 오랜 기간 살아남은 호모에렉투스를 살펴보자. 이들은 용맹한 전사들이었다. 그 옛날에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 여기저기로 모험을 떠났고, 다양한 환경에서 끈질기게 적응해서 살아남았다. 이 옛날 사람들은 머리도 좋았다. 정교한 아슐리안 석기를 개발한 것도, 처음으로 불을 사용한 것도 바로 호로 에렉투스였다. 최초로 집도 짓고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 다른 예로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를 살펴보자. 이들은 호모사피엔스보다 다부진 체격을 지녔다. 자신들보다 훨씬 크고 힘이 센 매머드 같은 동물도 잡아먹는 용맹한 사냥꾼이었다. 뇌 크기만이 지능을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우리보다도 뇌도 더 컸다. 장신구로 자신을 꾸미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즐길 줄 알았다. 다시 말해 현대적이고 고차원적인 특성을 보였다. 목과 귀의 생김새를 봤을 때 언어로 소통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복원도]


우리는 딱히 더 강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종과 구별되는 우리 종만의 특별함은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의 일부는 우리의 ‘다정함’에 있다. 우리는 서로 친밀감을 느끼고 서로 믿고 서로 도울 줄 안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소통할 줄 안다. 혼자보다 10명이 모이면, 또 10명보다 100명이 모이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종보다 큰 집단을 형성하면서 우위를 차지했고, 서로 힘을 합쳐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다정함’은 그저 따듯하고 달콤하기만 한 감정은 아니다. 결국 모든 생물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다. 다정함 역시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종 수준에서 생존하고자 선택한 이기적인 전략이다. 그 결과 우리를 향한 다정함은 다른 종에 대한 잔인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정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과거를 돌아봤을 때 ‘우리’라는 개념이 넓으면 넓을수록 생존에 유리했다는 거다. 무서운 맹수들 틈에서 홀로 사투를 벌일 때보다 부족사회를 이루고 협력할 때가 더 살아남기 쉬웠다. 또 부족끼리 끊임없이 싸울 때보다 국가를 이루고 같은 사회적 약속 아래 힘을 모을 때가 더 삶이 안정됐다. 
 
 

[혼자보다 10명이 모이면, 또 10명보다 100명이 모이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는 어쩌면 지금 우리도 ‘우리’의 범주를 계속 넓혀 가야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나 하나보다는 지역 사회를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며 나아가 지구 전체를 생각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처럼 범지구적인 문제에 직면한 지금, 우리 종 전체가 ‘우리’라는 유대감을 느끼고 힘을 합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천문학자 질 타터는 만약 우리가 외계 지적 생명체를 마주친다면, 그 외계인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일 확률보다 호의적일 확률이 더 높을 거라고 했다. 우리와 만날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기술을 지녔다는 건 그만큼 오랜 기간을 살아남으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문명을 발전 시켜 왔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외계인들도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는 ‘다정함’을 간직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게 타터의 주장이다.
 

[우리가 외계 지적 생명체를 마주친다면, 그 외계인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일 확률보다 호의적일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오늘날 주위를 둘러보면 흉흉한 뉴스가 판을 친다. 국제 사회에서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유전자 안에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는 고인류학의 주장은 온 인류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하려면 우리가 이제껏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출처>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과학 이야기≫, 이송교, 북스고, 2024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이민아 옮김, 디플롯, 2021
*인류의 진화: https://earthhow.com/human-evolution-timeline/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who-were-the-neanderth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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