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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시대 ‘개선한 인간’은 축복일까?
작성자이*희 조회2407
등록일2020-07-31

 

 

도구를 만드는 인간 ‘호모 파베르’는 끊임없이 더 나은 기계를 만들어왔고, 마침내 알파고처럼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도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도구의 궁극적 발달은 도구를 신체의 일부로 만드는 길입니다. 출발은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장애를 극복하게 해주는 휴머니즘 기술로 나타나지만, 결국에는 인간을 자연인 상태에서 강화한 개량인간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로 귀결하게 됩니다.

더는 사람이 자연인(Human)이 아니라 탈인간(Post Human)의 상태가 된다는 이러한 시도와 사상을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라고 부릅니다. 자연인이 포스트휴먼으로 가는 과정에 ‘트랜스휴먼’(Transhuman)을 거치게 됩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미 시작하였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그림 1]
(출처 : 이미지 투데이 http://www.imagetoday.co.kr)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하였지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인간의 생물학적 개량 시도를 막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포스트휴머니즘을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으로 제시하는 홍성욱 서울대 교수의 견해도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환경,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서로를 형성하고 의존하는 관계가 됐기 때문에 새로운 감수성이 필수적인데, 홍 교수는 그것을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봅니다.

포스트휴먼을 향한 시도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경마비로 인한 신체 마비와 같은 장애를 극복하고자 뇌의 신호를 포착해 로봇 팔다리를 움직이려는 시도부터, 신체 외골격 장치를 통해 근력을 강화하려는 엑소스켈레톤 개발, 궁극적으로는 뇌를 컴퓨터와 연결해 인간 두뇌와 인공지능을 합체시키려는 뇌-컴퓨터 연결 장치(Brain-Computer Interface) 등이 대표적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로 불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출전 자격을 놓고 논란을 부른 바 있습니다. 피스토리우스는 발목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 의족 착용을 위해 무릎 아래를 절단한 장애인 육상선수입니다. 그는 의족 등 보조기기를 착용하고 운동을 익혀 육상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04년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서 200m 달리기 금메달을 땄습니다.

장애인올림픽 우승 이후 피스토리우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육상 부문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하고 준비하였으나 출전 자격이 문제 됐습니다. 국제육상연맹은 피스토리우스가 경기 때 착용하는 탄소섬유 재질의 스프린터용 의족으로 다른 선수보다 ‘불공정한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 자격을 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림 2]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출처 : ABC뉴스 http://abcnews.go.com)

국제적 비난 여론이 일었고 피스토리우스는 국제 스포츠 중재재판소에 제소해, 출전 제한이 부당하다는 결정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2011년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에서 장애인 최초로 남자 1,600m 계주 은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출전하였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하였습니다.

2016년 10월 8일 스위스 클로텐에서 제1회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가 열렸습니다. 사이배슬론은 사이보그(Cyborg)들의 경기(athlon)라는 의미입니다. 장애인이 로봇과 뇌-기계 연결 장치(Brain-Machine Interface) 등 신체 능력 증강 기기를 착용한 사이보그가 되어 벌이는 대회입니다.

[그림 3] 사이배슬론
(출처 : 로봇신문 http://www.irobotnews.com)

한국도 완전 마비 장애인이 로봇을 입고 장애물을 통과하는 외골격 종목에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뺑소니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지체 장애 1급 김병욱 씨가 외골격 장치(엑소스켈레톤)를 착용하고 출전하였습니다.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의 휴 헤어 교수는 10대 때 암벽등반 도중 조난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암벽등반을 즐깁니다. 등반용 의족을 개발해 착용하고 70m 넘는 암벽도 거뜬히 오릅니다.

휴 헤어 교수는 “왜 당신들은 자신을 개선할 방법이 있는데 그 길을 택하지 않느냐?”라고 자연인(휴먼)에게 묻습니다. 두 다리를 잃고 장애인올림픽 달리기 선수로 출전하였던 에이미 멀린스는 이후 모델과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멀린스는 테드(TED) 강연에서 가늘고 늘씬한 의족을 착용한 자신을 부러워하던 동료가 “불공정하다.”라고 불평한 것을 소개하였습니다.

[영상 1] 에이미 멀린스 : 역경의 기회
(출처 : TED 홈페이지 http://www.ted.com)

타고난 신체 장애를 극복하고 불리한 여건에서 능력을 한껏 향상하려는 이들이 전하는 ‘인간 승리’의 사례가 있습니다. 기술의 도움으로 과거엔 상상하기 어렵던 수준까지 인간 능력이 향상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척수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기기를 조종해 로봇 팔과 다리를 사용하는 뇌-기계 연결 장치나 외골격 증강 기술이 실용화를 향해 진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경우 사람은 타고난 신체적·인지적 능력 이상의 존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뒤따릅니다. 이는 기술 발전을 통한 장애와 한계 극복이라는 인도주의적 모습을 띠고 있지만, 새로운 윤리적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인간 능력 향상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발달할 것인가, 각종 기기와의 결합을 통해 사이보그화하려는 인간을 어느 단계에서 제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림 4] LG 클로이 수트봇
(출처 : 인공지능신문 http://www.aitimes.kr)

외골격은 갑각류나 곤충처럼 몸 표면의 딱딱한 구조를 말하는데, 외골격 로봇은 사람 뼈와 근육을 대신하거나 증강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7개국 15개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조끼 형태의 외골격 로봇 ‘엑소베스트’를 공급하는 데 착용자 팔 힘을 7kg 보태주고 팔과 허리에 주어지는 부담을 40% 가량 줄여줍니다. LG전자도 무거운 짐을 들고 내려야 하는 창고 노동자를 보조하는 용도로 '클로이'라는 외골격 장치를 개발해 공개하였습니다.

경쟁이 활발한 분야는 군사 분야입니다. 미군은 오래전부터 보병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외골격 증강 장치 기술을 개발해오고 있습니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90㎏을 메고 최고 시속 16㎞/h로 달리는 외골격 로봇 ‘헐크’를 선보였습니다. 러시아와 중국도 미래전의 핵심 병기인 외골격 로봇의 개발과 실전 배치에 나섰습니다. 고령화 사회와 장애인들에겐 희망입니다. 이스라엘 기업이 개발한 '리워크(Rework)'는 하지 마비 환자를 보행하게 해 줍니다. 2012년 하반신이 마비된 영국 여성은 ‘리워크’를 착용하고 런던마라톤을 17일에 걸쳐 완주하였습니다.

[그림 5] 리워크(Rework)
(출처 : 경향신문 http://magazine.hankyung.com)

인간 두뇌를 컴퓨터와 연결하는 ‘뇌-컴퓨터 연결(BCI)’ 방법도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테슬라, 스페이스엑스(X)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인간의 뇌를 컴퓨터와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는데, 머스크는 그동안 비밀리에 인간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투자해오다가 2019년 ‘뉴럴링크’의 뇌-컴퓨터 연결 프로젝트를 공개하였습니다. 뉴럴링크는 일론 머스크가 2016년 약 1억 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BCI 전문 스타트업입니다.

뉴럴링크가 공개한 실험 내용은, 쥐의 두개골을 열고 머리카락 4분의 1 굵기의 미세한 실 모양의 센서를 삽입한 뒤 이를 통해 컴퓨터와 무선통신하는 방식입니다. 연구진이 공개한 실험은 쥐의 뇌에 이식한 1,500개의 센서 전극에서 정보를 전송받아 읽어내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림 6] 뉴럴링크 센서 칩
(출처 : 한국경제매거진 http://magazine.hankyung.com)

두개골을 뚫고 뇌에 전극을 넣는 행위는 두려워 보이지만, 이미 이런 시술을 한 사람이 14만 명 이상입니다. 미국 식품의약처(FDA) 승인을 받은 뇌 심부 자극 장치는 뇌에 심는 바늘 모양 전극인데 전류를 흘려보내면 파킨슨병이나 수전증 환자의 떨림을 개선하고 우울증도 완화해줍니다. 2004년 미국 브라운대 존 도너휴 교수는 사지 마비 환자의 대뇌에 96개의 전극이 달린 마이크로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두뇌 외부와 연결된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는 실험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뇌-컴퓨터 연결의 목표는 신체 마비나 척추 손상, 시각장애 등을 극복하는 기술적 플랫폼을 만드는 것입니다. 뉴럴링크의 최종 목표는 사람 두뇌를 컴퓨터와 연결해 디지털 정보를 뇌에 업로드하거나 사람의 생각을 컴퓨터로 다운로드하는 공상과학 속 현실입니다. 하지만 뉴럴링크의 실험 공개에도 현실적 장벽은 매우 높습니다.

뉴럴링크는 FDA에 사람을 상대로 한 실험 신청 의사를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뇌신경과학자들은 로봇을 이용해 뇌에 전극을 이식하고 이를 소프트웨어를 통해 분석하는 플랫폼이 매우 흥미롭지만, 이 장치가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각종 성형수술, 임플란트와 인공관절을 비롯한 다양한 인공장기 이식의 발달은 사람이 타고난 생명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개선을 추구해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국제 성형 의학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대비 성형수술 비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입니다. 두뇌가 인간 향상 시도의 예외일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입니다.

[그림 7]
(출처 : 이미지 투데이 http://www.imagetoday.co.kr)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교수는 <사피엔스>에서 결국 인공지능에 밀려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를 보완하려고 컴퓨터와의 결합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새로이 등장할 인류는 이제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신적 존재가 되리라 전망합니다.

사람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자신을 연마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변함없이 지속하여왔고 이는 현재의 성취를 이뤄낸 동력입니다. 근대 이후 휴머니즘의 핵심은 자유와 책임을 지니고 도전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신장해나가는 인간형입니다. 공부와 기술 훈련을 통해 자신과 종족의 능력을 발달시켜온 사람이 인공지능과의 결합이라는 강력한 기회를 거부하기 어려운 배경입니다.

이처럼 자연 상태의 인간을 기술을 통해 개량하려는 시도가 ‘트랜스휴머니즘’입니다. ‘600만 불의 사나이’처럼 기계장치와 결합한 새로운 존재는 어디까지 인간이고 기계일까. 장애 극복을 위한 휴먼 스토리로 출발한 인간 능력 향상 시도가 인공지능을 만나면서 ‘인공지능 환경에서의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똑똑한 기계에 의존하고 위임하는 영역이 늘어남에 따라 ‘비인간 행위 주체’는 근대 이후 형성된 인간주의-자유주의-합리주의의 전제를 뒤흔듭니다. 인간만을 의식과 이성의 주체로 여기고 구성된 인간의 자의식, 사회체계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인간중심주의에서 탈인간으로 가는 포스트휴먼 상황은 필연입니다. 포스트휴먼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우리에게는 “어떠한 포스트휴먼이 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기술에 의해 도구와 인간의 전통적 관계가 역전되고, 기술로 인해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과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은 간단히 해소되거나 사라질 문제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기술의 영향력이 확대됨으로 인해 생겨나는 이 문제는 기술 역사와 인간 성향을 고려할 때 불가역적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될 현상입니다. 무한한 인간 욕망과 강력한 기술 개발에 주어지는 대가와 보상은 추진 동력입니다.

인간이 도구와 맺어온 주종 관계가 역전되는 현실과 개량된 트랜스휴먼이 등장하는 미래는 불가피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결국 인공지능에 밀려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컴퓨터와의 결합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새로이 등장할 인류는 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신적 존재가 될 것이고 인간은 자연인과 개량된 인간으로 나뉘리라 전망합니다.

[그림 8]
(출처 : 이미지 투데이 http://www.imagetoday.co.kr)

장애 극복을 위한 휴먼 스토리로 출발한 인간 능력 향상 시도가 인공지능을 만나 인공지능 환경에서의 인간성에 관해 새로운 물음을 던집니다. 생래적으로 주어진 개념과 조건이 더는 인간 고유성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인간의 고유성과 본질적 속성으로 정의하고 합의할 것인가의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인간의 본질로 규정하고 수호해야 할 인간 고유성의 영역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입니다.

◈ 참고자료

  • ABC뉴스 http://abcnews.go.com
  • 로봇신문 http://www.irobotnews.com
  • 인공지능신문 http://www.aitimes.kr
  • 한국경제매거진 http://magazine.hankyung.com
  • TED 홈페이지 http://www.ted.com
  • 경향신문 http://magazine.hankyung.com
구 본 권 (IT 저널리스트, <로봇시대, 인간의 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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