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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교육

창의교육 이야기

권역별 창의인성교육 거점센터의 활동성과 및 학교 현장의 교수학습법과 미래의 유망직업을 소개합니다. 

  • 작성자크레존 담당자
  • 등록일2019.01.30
  • 조회수164

현관 벨이 울렸다. 남공은 책상에서 일어나 거실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조카 남유은이 와 있었다. 들르겠다는 문자가 왔었다. “삼촌 편지 왔어요.” ‘현대창의성연구소’에서 보낸 원고 청탁서였다. ‘창의성, 그거 좋은 것이여!’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조카가 삼촌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는 실내를 휘둘러보았다.

“작은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게 무슨 뜻인데요?”
“고등학교 간다는 애가 그것도 몰라서 어떻게 하냐?”,
“서울엔 장날도 없잖아요.”

‘남공은 장날?’ 그렇게 혼자 물음표를 달았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요, 속담은 진실치가 절반밖에 안 된대요?”

남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예를 들었는데?”
“여자 셋이 모이면 무너진 아파트가 일어선대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속담의 패러디로 짐작이 갔다. 그렇게 돌려서 말할 줄 아는 게 창의성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의 수다가 얼마나 대단한 힘인가, 남공은 가끔 놀라워하기도 했다. 남공은 어떤 과목 선생님한테 그런 얘길 들었는지 물었다. 공교롭게 국어시간에 들은 얘기라고 했다. 실천 방법이 결여된 교육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는 게 남공의 지론이었다. 특히 언어운용이 본래 창의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국어를 잘 가르치면 창의성은 자연스럽게 길러진다는 생각이었다. 수학은 수학대로, 과학은 과학대로 창의성을 기르는 실라버스를 짤 수 있을 거란 짐작도 했다.

“남유은, 너는 어떤 시를 좋아하니?”
“글쎄요, 김춘수의 꽃, 그 시가 좋은 시래요.”

남공은 그게 왜 좋은지를 물으려다 말을 접었다. 유명세로 본다면 ‘꽃’이라는 시를 앞지를 게 별로 없을 듯했다. 그러나 ‘꽃’은 사실 관념적인 서술로 되어 있고, 이미지가 추상적이어서 시로서는 노른자위에 해당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교육이라는 게 무서운지라, 그 시가 교과서에 실리면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랑은 받았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사랑은 학생들을 시에서 멀어지게 하면서 유명해진 것이기도 했다.

“같은 시인이 쓴 건데, ‘나의 하나님’이라는 시도 아니?”

남유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중학교 졸업한 학생으로서는 좀 어려운 시일지도 몰랐다. 남공은, 내가 낭독해볼 테니 들어보라면서, 김춘수 시집을 꺼냈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가라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남유은은 삼촌에게 책을 달라면서 말했다.

“그럴 수 있겠지.”

남유은이 책을 들여다보는 동안 남공이 말했다.

“자 책 놓고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

남유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는 일단 매우 창의적이라고 인정하자. 시인은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파악한다. ‘나의 하나님’이니까, 주관적이다. 그리고 이 시인이 구사하는 방법은 매우 이질적인 어휘를 마주놓는 것, 즉 등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늙은 비애’, ‘푸줏간에 걸린 살점’, ‘순결’, ‘연둣빛 바람’ 등으로 이미지를 변이하면서 등치된다. 일상적인 언어 운용을 벗어나는 어법이다. 이는 이미지의 극단적 이질성을 동일화하는 은유이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대상을 이렇게 다양한 비유항으로 엮어낼 수 있는 힘이 시적 언어의 힘이다.

“이처럼 다양한 공동항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이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지.”

남유은은 삼촌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돌이돌이를 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비애가 살점이고, 살점은 다시 순결이 되고, 순결은 바람이라고 하는 거잖아요?”
“맞아, 그걸 이미지의 계열화라고 하는 거란다.”
“잘 모르겠는데요.”
“뭘 모르겠다는 거지?”

남유은이 뒤통수를 긁었다.

“은유의 풍부성이, 정말 창의성의 증거인가 하는 점.”
“그래 그런 걸 자성이라고 하는데, 자성할 줄 아는 것도 창의성 가운데 하나다.”

남유은이 빙긋이 웃었다. 그 때 남유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삼촌의 말씀은 내 허기진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옳아, 바로 그런 적용능력도 창의성이다.”

말씀이 배를 채워주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남공은 조카 남유은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식당까지 가자면 한 30분은 걸어야 했다. 마을 어구에 포장마차가 벌써 문을 열었다. 앉을 자리 있음, 그런 문구도 보였다.

“여기서 우동이나 한 그릇 하자.”
“좋아요!”

남유은이 꽤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포장마차 안은 생각보다 넓고, 난방이 잘 되어 포근했다. 좌판 건너편에 산낙지, 멍게, 파전, 소주, 막걸리 그런 음식 이름들을 써 붙였다.

“남유은, 너 산낙지 어디서 잡는지 알아?”

남공이 조카의 어깨를 치면서 물었다.

“산에서 잡았다고 쓰여 있는데요.”
“야아, 제법이다. 그럼 산낙지의 반의어를 예로 들어볼래?”
“죽은 낙지...?”
“그럼 ‘산’의 반대말이 ‘죽은’이야?”
“바다 낙지?”
“그쯤 되어야겠지. 저 낙지는 주인이 잡아왔겠어, 아니면 사왔겠어?”
“아, 판 낙지.”

그렇게 해서 살낙지, 들낙지, 강낙지, 알칼리낙지.... 별별 낙지가 다 등장했다. 두 사람의 머리가 슬슬 풀리는 중이었다. 주인이 옆 손님이 주문한 아구탕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파를 숭숭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생강 다진 것을 숟가락으로 퍼 넣고는, 고금그릇에서 소금을 한줌 집어넣었다. 그야말로 대충대충이었다. 남유은은 주인이 하는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래도 맛이 척 어울린다.”

남공의 말이었다. 남공은 그렇게 대충 해도 손맛이 나는 게 퍼지 스타일의 사고라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설명을 덧붙자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소주 한 병 주소. 얘는 물 한 컵 하고.”

남공은 조카 남유은의 컵에 자기 컵을 부딪치면서, ‘고딩이 축하’를 외쳤다.

“남유은, ‘물은 불이다’ 그렇게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어?”

남유은은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면 은유가 되는가 하는 눈치로, 어벙한 얼굴로 삼촌을 쳐다봤다.

“술 마시면 얼굴이 붉어진다는 뜻?”
“근리하다.”

남공은 술이 알콜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일정 도수가 넘으면 불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남유은은 그건 학교에서 배워서 안다고 했다.

“물은 칼이다, 또는 물은 톱이다, 그렇게 말하면?”

남공은 점수천석(點水穿石)이란 한자성어를 떠올리면서 물었다.

“글쎄요,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면 칼로 쓸 수도 있겠네요.”
“그래? 어떻게 그런 생각을?”

남유은은 어떤 탐정소설에서 읽었다고 대답했다. 남공은 소설이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다른 예도 있다. 수압절단기라고....”

남공은 워터젯 절단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물은 칼, 물은 톱 그런 등식이 성립하고 실제로 물이 칼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였다. 은유가 사실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문제는 그런 발상을 누가 처음 하는가, 그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발상을 용인하고 수용해주는 사회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점도 일러주었다. 주문한 우동이 나왔다.

“우동은 일본음식 아닌가요?”
“요새 음식에는 국경이 없어졌어.”
“개고기는 안 그럴 텐데요.”
“반증을 잘도 드네. 그것도 창의성이다.”

반증은 과도한 일반화를 방지해준다. 과도한 일반화는 디테일을 죽인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외친 공산당 선언은 과도한 일반화를 안고 출발한 것이라고, 남공은 생각하고 있었다. 반증은 비판의식이고, 창의성을 위해서는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명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창의성은 타고나야 되는 거잖아요?”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남공은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어느 분야든지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 하루 8시간 잡으면 1,250일, 대개 4년은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창의성이 전문가 수준이 되려면 창의성 훈련을 3-4년은 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그것은 창의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노력은 안 하고 창의적 인간은 타고나야 한다고 밀쳐두는 것은 창의성의 적이라고 남공은 생각하는 편이었다.

“바보는 감옥에 안 간다면서요?”
“창의적인 사람이 못된 놈 노릇 하기도 한다는 말이냐?”

남유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공은 예를 들어 보라고 했다.

“기요틴요!

남공은 잠시 조카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동 다 식는다. 먹고 이야기하자.”

남공은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주인이 안주로 내놓은 ‘불닭발’을 입에 집어넣었다.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매웠다. “삼촌, 대답할 말이 없지요?” 남공은 기요틴이란 단두대를 만든 기요탱(J.I. Guillotin, 1738.5.28.-1814.3.26.)에 대해 설명이 궁했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기억을 되살렸다.

“자, 이렇게 생각해보자. 사형제도가 시행되는 시대에, 사형수를 어떻게 죽이는 것이 인간적일까?”
“사형제도는 나쁜 제도니까 그걸 먼저 없애야죠.”

하기는 옳은 말이었다. 사형제도를 없애면 사형 방법을 가지고 논란을 벌일 거리가 없어지는 셈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건 나치를 없애야 유태인 학살이 자행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제도에 저항하기도 하지만, 당대에 통용되는 제도를 거슬러 살기 어려운 모순적인 존재라는 점을 납득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궁색하지만 개 잡는 방법을 예로 들었다. ‘복날 개 패듯 한다.’는 속담을 예로 들었다. 사형수라도 가능하면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맞을 권리가 있다는 전제라는 설명을 했다. 사형제도가 운용되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하자는 뜻으로 파리대학 교수였던 기요탱과 왕의 주치의였던 루이(Antoine Louis)라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게 기요틴이라는 단두대고, 따라서 그 단두대를 만든 기요탱은 결국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얘기했다. 남유은은 삼촌을 바라보고 실실 웃었다.

“삼촌은 뭘 몰라요. ‘캐틀 디캐피테이션’이라는 헤비메탈 밴드가 있걸랑요.”

소 목자르기라는 이름이었다. 남공은 동네 골목의 정육점 앞에 ‘소 잡는 날’이라는 간판이 서 있던 게 머리에 떠올랐다. 전에 언제던가 채식주의가 세계의 멸망을 구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폭력의 근원은 육식의 오랜 습관에서 유래하는 것이란 전제에서 나온 대안이었다. 사특한 창의성, 간교한 창의성.... 악어의 눈물.... 악어가 정말 우나? 창의성이 과연 지구를 구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목이 막혔다.

“제가 한잔 드릴까요?”

남남유은이 삼촌 잔에다가 소주병을 기울였다.

“남유은, 너 고등학교는 어디 갈 작정이냐?”
“아빠가 대안학교 가래요.”

남공은 소주잔을 든 채 잠시 멍하니 조카를 바라보았다. 대문자로 쓰는 서울, Seoul, 수도, 자본, 그렇게 연결되는 서울은 ‘사형에 처할’ 도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은유는 창의성의 다양한 영역 가운데 한 구석일 뿐이다.”
“너그러운 것도 창의성인가요?”
“넓게 보면....”

남그렇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남공의 아내에게서 핸드폰 메시지가 왔다. ‘가출한 남편 찾는 여자, 망부석 되기 전에 돌아오소’ 남공은 유머도 창의성이란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다.

 
우한용 (서울대 명예교수, 소설가)
수도중부권 중등 창의교육 거점센터 (충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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