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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교육

해외창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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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크레존
  • 등록일2016.01.11
  • 조회수446

 

미국의 새해

 

 

2016년 새해 새날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가족들이 일어날 때까지 글을 썼다. 아무리 늦어도 10시면 잠이 들고, 5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건, 미국에 와서 생긴 기분 좋은 습관이다.

 

하루 먼저 시작한 한국의 새해에 맞춰 어제 가족, 친구들과 새해인사를 나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덕담은 김정운 선생님의

“안식년을 잘 보내야 행복해집니다.. 많이 걷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한해를 기원합니다!!!” 였다.

‘많이 걷고 많이 읽고 많이 쓰자.’

벽에 걸어 두고 실천하고 싶은 새해 결심이다. ‘걷기’가 제일 처음인 것도 마음에 든다. 남은 체류기간 동안 내 두 발로 서부의 대자연을 천천히 걸어보리라는 게 내 소망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선생님께 별 생각 없이 ‘새해에도 대작 쓰시고, 적당히 외로우시고 많이 행복하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1시간 후 신간을 검색하다가 며칠 전 선생님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목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이럴 때 정말 소름이 돋는다.

 

아침 시간에 맞춰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새벽 6시부터 북한산행, 남산 일출 보기, 해장국집에서 아침 먹는 일정을 다 소화하고 집에 와 계셨다. 서울 시민의 20% 정도가 남산에 와 있었다는 어머니의 전언에 정신이 번쩍 났다. 아, 정말 부지런한 대한민국이다.

 

나는 1월 1일 한국식으로 아침에 떡국을 먹은 후 점심부터는 미국식 일정을 소화했다. 모임 기획하기를 좋아하는 다이애나가 며칠 전 ‘evit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메일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제목은 ‘사랑의 피크닉 (Picnic of Love)’.

내용은 1월 1일 12시부터 4시까지 집 앞 공원에 모여 새해맞이 피크닉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No’에 표시를 하게 되어 있고,

‘Host에게 남길 전언이 있습니까?’에 주관식으로 메시지를 남기게 되어 있었으며,

‘게스트 리스트’를 클릭하면 우리 가족 말고 또 누구를 초대했으며, 누가 수락했고 안했는지, 혹은 아직 대답을 안했는지를 볼 수 있었다.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모여서 한바탕 놀자고? 나는 그 제안이 너무 신선했다. 한편으로 1일에는 다들 각자의 일정이 있지 않을까, 이방인인 우리야 별 일 없다고 해도 과연 몇 가족이나 오겠나 싶기도 했다. 나는 어쨌든 Yes에 표시를 하고, 감사의 메시지를 쓰고, 게스트 리스트를 클릭하니, 지난 번 비치 모임, 할로윈 모임에서 봤던 가족 18팀이었다. 놀랍게도 서너집 빼고는 전원 Yes였다. 미국은 1월 1일에 함께 모여 피크닉하는 게 별로 어색하지 않은 듯 했다.

 

나는 그들을 다이애나 사단이라 부른다. 대부분 중상층 백인이고, 남미출신이라도 직업이 대학교수 등으로 미국 주류사회에 있는 사람들이다. 갓난아기부터 초등학생 6학년까지의 아이들 두 셋이 있는 비슷한 연령대다. 또한 대부분 바이아 디에고나 프리마베라에 면해 있는 집에 사는 이웃지간이며,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아이들도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다. 당연히 서로의 남편, 아내, 아이들, 그들의 친척들, 그 집에서 키우는 개의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한마디로 아, 하면 어, 하는 사이인 것이다. 거기에 어쩌다가 우리 가족만 끼었으니 우리는 지나치게 유표화되어 있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내가 그들의 이름을 외우고, 분별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나같이 자기들이랑 똑 닮은 아이를 낳은 덕분에 누구의 엄마이고 아빠인지는 쉽게 알겠는데, 누가 누구의 남편이고 부인인지는 무척 헷갈렸다. 스스럼없이 남의 남편, 남의 아내와 ‘주부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울리기 때문이다.

 

모임의 집결지는 로스 로블레스 파크 Ros Robles Park. ‘공원’이라고는 하나 아무 시설도 없이 잔디만 깔려 있는, 바이아 디에고에 면한 일종의 공터다. 햇살이 따뜻하게 퍼져 피크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12시 5분 전에 도착하니 늘 그렇듯 다이애나 가족만 와 있었다. 함께 야외용 의자와 테이블을 펴고, 가져간 음식과 냅킨들을 세팅하고, 컨트리 음악을 틀고, 한참 이야기꽃을 펼치고 있으니 30분이 지나서야 음식을 하나씩 들고 한 가족씩 쓱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공이나, 줄넘기, 프리스비 등을 꺼내 함께 신나게 뛰어 놀고,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었다. 요즘 영어로 말하는데 부쩍 자신감이 붙은 딸은(다들 6개월 정도 지나면 변화가 있을 거라 하더니 과연 신기하게도 그런 것 같다) 친구들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미국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는지 아이들은 금방 이해하고 즐겁게 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우리나라 말로 해보려고

“무웅와 꼬지 쉬었습니다”

하는 모습들이 귀여웠다. 몇 번이고 어떻게 발음하는지 딸에게 물어보면서 제대로 발음하려고 애썼다. 억지로 ‘공부’하려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가 어렵고 생소하기는 한 모양인지 조금 지나니까 “The Roses are blooming”이라고 영어로 타협하여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그렇게 놀더니 딸은 내친 김에 줄넘기로 ‘꼬마야 꼬마야’ 놀이도 함께 하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하였다. 늘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에 쭈뼛쭈뼛 어색하게 끼어 따라가다가 적극적으로 변화된 딸의 모습에 흐뭇했다. 여자애들은 크리스티나가 준비해온 ‘메니큐어 살롱’에서 서로 매니큐어를 발라주며 킬킬대기도 하고, 누군가 가져온 드론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우르르 우르르 몰려 다니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소피가 가져온 배구공을 딸이 어색하게 받아 치고 있으니, 함께 몰려 축구를 하고 있던 어떤 남자 아이가 쓱 다가와서

“왼 손 바닥 위에 오른 손을 올려 놓고 엄지손가락만 남겨두고 오므려봐. 그리고 모아진 부분에 공을 맞춰서 쳐봐” 했다.

몇 번이고 딸의 자세를 잡아주고 잘 치는지 살피더니 그 아이는 또 쓱 사라졌다. 이런 훈훈한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새해 첫 날의 따뜻한 오후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사진1

 ▲ 로스 로블로스 파크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딸과 소피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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