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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교육

해외창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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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크레존
  • 등록일2015.10.22
  • 조회수2291

미국의 창의체험학습 (19) 

 

Tall Ship project

 

오전 9시. 

 

나는 호프 스쿨 교실에서 다른 엄마들과 함께 초조하게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책걸상을 양쪽으로 밀어 넓은 공간을 만든 후, 각자 하나씩 준비해 온 음식을 뷔페처럼 테이블에 진열했다. 문 앞과 교실 천정에 검은색, 빨간색 띠를 붙이고, 행진곡을 잔잔하게 틀어놓으니 제법 축제 분위기가 나서 아이들을 환영할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다.

사진1

사진2

[사진1,2 ]아이들 환영 파티 준비 

 

 

“왜 하필 어젯밤 천둥, 번개가 치는지.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았나 걱정이네요”
“그러게요. 우리 아이는 엄마랑 떨어져서 잔 게 처음이거든요.”

 

 

“작년에 배에서 바다에 빠진 아이가 하나 있었다던데.”

“어머나 정말요?”

“다행히 금방 건졌다지만 떨어지면서 어디에라도 부딪쳤으면 어쩔 뻔 했어요.”

 

1박 2일로 큰 배 Tall Ship에서 선원생활을 체험하러 떠난 아이들에 대한 미국 엄마들의 걱정은 한국 엄마들 못지않았다.

 

아 드디어 온다. 검은 쓰레기봉지를 하나씩 끌고 환한 얼굴로 아이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다. 그 안에는 쓰레기가 아니라 하룻 동안의 생존 물품들이 들어있다. 엄마와 찐한 포옹. 뽀뽀. 빠르게 오가는 질문과 흥분어린 경험담.  밝은 얼굴로 도착한 포스터 선생님이 우리들의 걱정을 단번에 해소하는 말씀을 해주신다. 

 

“모두들 잘 지냈어요. 한 명도 우는 아이 없었고, 다들 잠도 잘 잤어요.”

 

학교 예산 부족으로 버스를 대절할 수 없어서 자원한 학부모들의 차를 나눠 타고 오기 때문에 아이들의 도착 시간이 조금씩 달랐다.
드디어 내 딸도 환하게 웃으며 도착. 한 달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갑다. 많은 것이 궁금해 죽겠는데 “재밌었어요” 한마디 하더니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손을 씻고는 아침이 차려진 책상으로 달려가 버린다. 집에서는 결코 먹지도 않던 딱딱한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꼼꼼히 발라서 맛있게 와구와구 먹는다.

 

사진3

[사진3]침낭, 먹을 것, 옷가지가 들어 있는 쓰레기봉지를 끌고 오는 딸

 

 

호프 초등학교에는 4학년 이상부터 1박 2일의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있다. 학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라서 학기 초부터 안내를 하고, 기금을 모으고, 떠나기 한 달 전에는 학부모 설명회를 통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학년마다 행선지가 다른데, 4학년은 산타바바라 해양박물관, 해양 연구소와 연계해서 프로그램을 기획한 ‘Tall Ship’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큰 배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1835년 선원의 ‘힘들었던’ 생활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배도 아니고 바다에 정박해 있는 배이긴 하지만 말이다. 역사교육, 팀워크, 비판적 사고, 규율, 자존감을 기반으로 한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것이 제시된 프로그램의 취지다.

 

준비물은

- 슬리핑 백 한 개
- 밥그릇, 컵, 스푼 한 개(유리제품 안됨)
- 비옷
- 편안한 옷 두 세트(젖을 경우 대비)
- 양말 두 켤레와 운동화
- 방한복, 장갑, 모자  였다.

 

 

이 모든 것을 커다란 검은 비닐 쓰레기봉지에 한꺼번에 넣어서 그 위에 이름을 붙여 가져오라는 게 전달사항이었다. (치솔, 치약, 수건이 리스트에 없어서 너무 기본적인 거라 안적었나보다 하고 넣어 보냈다. 그런데 쓴 흔적도 없이 도로 가지고 왔다. 1박 2일 동안 세수고 양치질이고 아무것도 안했다는 것이다. 화장실만 있고 손 씻을 데도 없었다고 한다. 아, 때로 미국 교육은 너무나 뻔뻔하게 과감하다.)

 

 

아이들은 오전에 정상적으로 수업을 하고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해양박물관을 관람한다. 그리고 늦은 오후 선원이 되어 배에 오른다. 승선하여 선장의 지휘 아래 뱃노래를 부르고, 그 당시 역사에 대해 토론하고, 항해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조를 나눠서 그 시대의 선원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면 겔리조는 부엌일을 담당해서 그날 먹을 스튜 요리와 설거지를 해야 한다. 내 딸이 속한 리거스조는 밧줄을 감고 푸는 역할, 갑판청소를 담당한다.

 

사진4

사진5

사진6

사진7

사진8
[사진4,5,6,7,8]체험 전 조별로 그린 체험 상상화

 

 

“엄마, 배에 가서 자원봉사 할 사람 손들라고 하면 절대 손 들면 안된대요”
“왜?”
“바이올렛이라는 반 친구가 나한테만 살짝 알려줬는데요, 화장실 청소 시킨대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내 아이의 귀에까지 들어왔으니 누구에게나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인 듯 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래도 한 명 손을 든 착한-혹은 비밀접선에 어두운- 아이가 있어서 결국 그 아이가 화장실 청소를 했다고 한다.) 돌아가면서 해적이 오나 안 오나 보초를 서기도 한다. 자다가 새벽 2시에 일어나 보초를 서야 한다. 자원봉사 학부모의 역할은 주로 시간별로 선원들을 깨우는 일이다. 아무튼 적당히가 아니라 제대로 선원 체험을 해보는 것이다.

 

 

체험활동을 떠나기 전, 나는 아이가 혼자 못하는 게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선 침낭에 들어가 안쪽에서 지퍼 잠그기부터 연습했다. 겨우 정복한 다음의 난코스는 침낭을 잘 말아서 침낭주머니에 넣는 일이었다(사실 이건 나도 안간힘을 써야 가능했다). 맹연습을 거듭했으나 침낭주머니 입구의 두 배의 부피로 불어나는 침낭을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침낭주머니를 포기하고 빨랫줄로 둘둘 묶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는 매듭을 묶고 풀 줄도 몰랐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매듭을 묶고 푸는 걸 맹연습시켰다. 쓰레기 봉지를 묶고 푸는 것도 반복해서 연습했다. 그밖에도 단단한 생수 뚜껑을 돌리는 일이라든지 자기 전 안경을 안경집에 잘 넣어 보관하는 일 등 야무지게 잘 할지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모두 스스로 해보도록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내가 대신 해줬던 일들이었다. 이번 활동을 계기로 공부만큼이나 중요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서바이벌 능력을 길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체험활동을 위한 학부모 숙제도 있었다. 아이들 몰래 선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준비하라는 거였다. 마치 1835년에 살고 있는 것처럼 편지를 써야 하는데, 아이들이 교훈과 재미를 얻을 수 있도록 당대의 시대상이 포함되어야 한다.

 

 

“명심하라. 때는 1835년이고, 학생들은 선원이라는 직업으로 상인의 배에 승선했다. 선원은 1년 이상 집에서 떨어진 채 항해하는 상태다. 당신은 선원의 부모, 아내, 아이, 구혼자, 친구 중 하나가 되어 농가의 삶 혹은 도시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새로운 발명이 생겨나 들떠 있는지 쓰면 된다.”

 

 

‘와. 정말 어려운 숙제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마디가 더 덧붙여져 있었다.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보초를 서느라 힘들 때 이 편지를 전달받으면 무척 힘이 날테니 정성껏 준비해달라.” 

 

 

그리고 시대적 맥락이 몇 개 제시되어 있었다.

 

-여성들은 투표를 할 수 없다.
-가스등이 최근 발명되었다.
-여성들은 선원이 될 수 없다.
-선원의 삶은 고되고, 선장은 잔혹한 경우가 많았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재선된 상태다.
-보스턴 음악 아카데미가 최근 문을 열었다.
-워바슈강과 이리 운하가 건설 중이다.

 

다행히 다음과 같은 샘플 편지도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Charles 선원에게

 

네가 캘리포니아 해안을 떠난 지 이렇게 오래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구나. 네가 많이 보고 싶단다. 샌디에고, 몬트레이를 거쳐 산타 바바라까지 항해를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길 바란다. 선장에게 산타 바바라에 도착하면 네게 이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못된 자가 네게 잘 전달할지 걱정이구나.

네가 없는 동안 이곳엔 많은 변화가 있었단다. 네 누나는 결혼을 했고 뉴욕에 사는 네 사촌이 누나의 방을 차지했어. 그녀는 집안일과 농장일을 많이 도와준단다. 네 아버지는 내륙 깊숙이 물자를 운반할 이리 운하(Erie canal)를 짓는 일을 하고 계시다. 캘리포니아에도 운하가 있니? 이 일 때문에 너희 아버지가 계속 바쁘셔서 일손이 부족해 포도를 수확하기가 어렵구나.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네가 탄 배가 정착해 있었던 항구를 오래 산책하곤 한단다. 아들아, 오늘 밤 자기 전에, 보초를 설 때, 그리고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나를 생각해 다오. 케이프 호른(Cape Horn)을 거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행운이 있길 바라며 곧 보스턴 항구에서 널 만날 날을 고대한다. 너를 위해 기도하마. 순풍이 불고 바다가 잔잔하길 바라며.

 

사랑을 담아,

엄마가.

 

 

작문하느라 좀 애를 먹긴 했지만, 박물관-연구소-학교를 중심으로 학부모-아이가 각자의 역할을 갖고 힘을 모아 이 1박2일의 체험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또한 체험을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수업 시간에 큰 배 그림을 그리고, 조를 나눠서 그 당시 역사를 조사하고, 선원의 노래와 뱃사람의 언어를 배우며 이 날의 체험을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체험 전에 배에서 이런 활동을 할 것이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쓰고, 체험 후에 다시 체험한 이야기를 써보는 활동을 했다. 한 마디로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학교와 기관을 연계한 입체적인 융합체험학습이었다. 또한 제 3자의 입장에서 과거의 역사를 배우는 게 아니라 연기를 통해 그 사람이 직접 되어봄으로써 역사를 자기 몸으로 체화하게끔 하는 교육이었다.

 

사진9

[사진9]체험 전 반 아이들의 큰 배 그림

 

 

사진10

사진11

사진12

사진13

[사진10,11,12,13]체험 전 딸의 체험관련 학습 노트

 

딸이 배에서 실제로 사용했다고 하는 뱃사람의 언어들도 참 재밌었다. 그 몇 개의 예는 다음과 같다.

 

 

Aye to mean, “yes”
Aye Aye to mean “yes, I understood your orders and yes, I will carry them out”
Avast to mean, “stop”
Sir every time we speak to the Captain

 

 

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선생님과 아이들은 다음날 오전 9시에 교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축제의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교실에서 ‘난파선 파티 Ship Wreck Party’를 한다. 한마디로 녹초가 된 아이들의 휴식 시간인데, 오전 내내 아이들은 학부모들이 준비해놓은 음식을 먹으며 교실 바닥에 슬리핑 백을 깔고 자기도 하고, ‘후크 선장’ 영화를 보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14번

15번

[사진 14,15] 난파선 파티 현장

 

매듭도 혼자 못 묶던 아이가 갑판청소 등을 하며 하룻밤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온 것이 나는 마냥 대견했다. 바닥에서 친구들과 뒹굴며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교실이라는 공간이 참 넉넉하고 다정한 공간이고, 다양한 활동을 품을 수 있는 멋진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UCSB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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