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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베이젼’으로 본 감염병 팬데믹
작성자c*********1 조회13
등록일2024-04-25

양훼영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감기 증상을 보이다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한다. 사망 원인도 채 알기 전, 아들마저 같은 증상으로 죽는다. 같은 시각, 전 세계 곳곳에서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하고,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치료제도 없는 상황에서 가짜뉴스가 퍼지고, 백신 개발 과정은 애를 먹는다.
 
영화 '컨베이젼'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지난 4년 동안 전 세계가 겪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너무 똑같지만, 위 이야기는 영화 ‘컨베이젼’의 줄거리입니다. 2011년 개봉한 이 영화는 맷 데이먼, 주드 로, 로렌스 피시번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개봉 전 주목을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감독이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팬데믹 모델을 자문받고, 신종플루에 대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대응을 조사해 과학적 사실에 방점을 찍고 만들었는데, 그렇다 보니 극적 재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9년 뒤인 2020년, 영화 ‘컨베이젼’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예언한 영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영화”, “극사실주의 영화”라는 재평가받은 겁니다. 원인 모를 감염병, 접촉을 통한 확산, 격리와 도시 봉쇄, 빠르게 퍼져나가는 가짜뉴스, 그리고 바이러스의 정체를 찾고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과학자들의 모습까지. 우리가 지나온 코로나19 팬데믹과 정말 닮았기 때문입니다.


4년 4개월 만의 코로나19 ‘졸업’
 
“2024년 5월 1일부터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관심 단계로 하향 조정합니다.”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경계(3단계)’에서 ‘관심(1단계)’으로 두 단계 낮췄습니다. 4단계로 구성된 감염병 위기 경보 가운데 가장 낮은 단계로, 2020년 1월 3일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입돼 격상한 이후 4년 4개월 만입니다. 병원과 요양병원, 약국 등 일부에서 유지됐던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권고로 바꿔 진짜 ‘엔데믹’이 온 셈입니다.
 
 

2020년 1월 17일, 중국 우한에서 한 남성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모습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지난 4년 4개월을 되돌아보겠습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 증상이 집단으로 발생하자, 정부는 2020년 1월 3일 ‘우한시 원인불명 폐렴 대책반’을 가동하고 감염병 위기 경보를 ‘관심’으로 올렸습니다. 얼마 뒤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감염병 위기 경보는 ‘주의’로 격상됐습니다. 2020년 2월, 코로나19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하자 감염병 단계는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올라갔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시행됐습니다.
 
 2020년 11월, 마스크 착용 의무화 시행 안내문 [출처: 질병관리청]

 
2020년 10월, 대중교통, 의료기관 등 다중 이용시설을 중심으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습니다. 2021년 2월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같은 해 4월부터는 일반인에게도 백신 접종을 확대했습니다. 2021년 7월부터 11월까지는 강도 높은 거리두기가 시행됐습니다. 오후 6시 이후에는 3인 이상 모일 수 없었고, 결혼식과 장례식엔 가족만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백신 접종률이 절반 정도에 이르자, 정부는 ‘위드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을 시도했습니다. 상업시설의 영업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접종 증명이나 음성임을 확인하는 ‘방역 패스’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또다시 강력해졌습니다. 전파력이 높은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단계적 일상 회복을 시도한 지 한 달 만인 2021년 12월 1일, 국내에서 첫 오미크론 확진자가 나왔고, 2022년 3월 17일에는 하루 확진자가 62만여 명까지 나올 정도로 대유행이 닥쳤습니다. 감염 속도는 빠르지만 위중증도는 낮은 오미크론 변이는 대유행을 가져왔지만, 역설적으로 방역 완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2022년 4월 18일, 정부는 ‘포스트 오미크론’을 선언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2년 3개월 만에 해제했습니다. 2022년 겨울, 계절적 요인으로 인해 확진자가 다소 늘어났지만, 높아진 국민의 집단 면역 수준 덕분에 일상 회복 기조는 유지됐습니다.
 
2023년 1월 30일 대중교통과 의료기관을 제외한 실내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졌고, 3월에는 대중교통에서의 의무도 사라졌습니다. 2023년 6월 감염병 위기 경보는 ‘심각’에서 ‘경계’로 낮아졌고, 확진자 격리 7일 의무가 5일로 바꿨습니다. 이후 고위험군 보호를 위해 남겨졌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과 입소형 감염 취약시설에만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만 남았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5월 1일부터는 모든 곳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게 되면서 길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터널을 모두 지나왔습니다.
 
코로나19가 남긴 과학적 기록, 최단기 백신 개발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를 뒤바꿨습니다.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연구가 중단되거나 축소됐고, 많은 신진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국제협력 또한 중단됐습니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정복을 위해 많은 과학자가 힘을 합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출판 그룹인 스프링거 네이처와 과학기술 자문기업인 디지털 사이언스가 지난 2020년 5~6월에 진행한 ‘연구자 태도 국제 조사’ 결과를 보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3천여 명 가운데 43%가 연구 방향을 코로나19와 관련한 것으로 수정했거나 그럴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논문 발표도 늘었습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1년 동안 발표된 코로나19 관련 논문만 무려 7만5천여 편에 달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시작이 중국인데, 정체를 알아낸 것도 중국이었습니다. 중국 푸단대 장융전 교수는 우한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바이러스성 폐렴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변종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처음 확인합니다. 이때가 2020년 1월 5일로, 중국 정부가 WHO에 신종 감염병을 처음 보고한 지 11일 만입니다. 장융전 교수는 전 세계 모든 과학자가 볼 수 있도록 신종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잡으려는 과학자들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미국 텍사스오스틴대 연구진이 작성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 입체 구조도  [출처: 사이언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게놈 공개 이후 전 세계 과학자들은 전례 없는 빠른 속도로 각종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가장 먼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3D 지도가 완성됐습니다. 미국 텍사스오스틴대와 국립보건연구소(NIH) 연구팀은 2020년 2월 1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에 솟아있는 돌기 단백질(스파이크 단백질)의 입체 구조도를 발표했습니다. 돌기 단백질은 인간 세포에 달라붙어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 증식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로, 감염의 첫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스 바이러스와 구조는 비슷하지만 돌기 단백질이 결정적으로 달랐습니다. 특히, 인간 세포 수용체인 ACE2에 대한 친화력이 사스보다 10배 높았는데, 사스보다 코로나19의 감염력이 높다는 걸 의미합니다. 중국 연구진으로부터 게놈 정보를 받아 돌기 단백질 샘플을 만드는 데 2주, 3차원 지도를 만들어 학술지에 원고를 내기까지 12일이 더 걸렸습니다. 최소 몇 달은 걸리는 연구 과정을 한 달 만에 모두 끝낸 겁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3D 지도를 공개한 이후, 백신 개발에도 속도가 붙게 됩니다. WHO는 감염병의 공식 명칭을 코로나19(COVID-19)로 확정하면서 백신 개발까지 18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번에도 빨랐습니다. 코로나19의 게놈이 공개된 지 두 달 만인 2020년 3월, 미국의 제약업체인 모더나와 중국 캔니노는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2020년 11월, 인류는 ‘예방효과 95%’를 갖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평균 10년 이상 걸리는 걸 생각해보면 가히 빛의 속도로 개발이 진행된 셈입니다.
 
 

세계 최초로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화이자-바이오앤테크의 코로나19 백신 생산 모습  [출처: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은 개발 속도만큼이나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mRNA 백신이라는 점이 특별합니다. 기존 백신은 바이러스 독성을 약하게 한 뒤 몸속에 넣어 면역반응이 일어나게 하고, 실제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면역 체계가 작동해 감염을 막는 방식입니다. mRNA 백신은 유전정보인 mRNA를 세포 안에 넣어 인체 세포가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과 똑같은 형태의 단백질을 스스로 만들도록 해 면역능력을 갖추는 새로운 개념입니다. mRNA 기술이 개발된 건 오래전이지만, 원하는 단백질 발현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커리코 커털린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변형된 뉴클레오사이드를 이용해 mRNA를 합성하면서 선쳔면역반응을 회피하고 안정성이 증가한 기술이 개발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큰 기여를 한 두 사람은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포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라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이지만, 길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습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겠지만, 팬데믹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 감염병 대유행을 대비해야 합니다. 빌 게이츠는 “20년 이내 다음 감염병에 의한 팬데믹 발생 가능성이 50% 내외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빌 게이츠는 다음 팬데믹의 발생 경로를 두 가지로 예측했는데, 첫 번째는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 등 자연적 발생이고, 두 번째는 바이오 테러에 의한 팬데믹 가능성입니다. 또한 팬데믹 상황에서 피해 최소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제시했습니다. 감염병이 감지되면 7일 안에 모든 국가와 사회가 통제를 시작하고, 100일 안에 팬데믹으로 번지지 않게 방역을 강화하며, 6개월 안에 충분한 양의 백신을 생산·공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프로젝트 넥스트젠’을 통해 새로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6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미 정부 주도 아래 민간과 협력해 백신‧치료제 개발의 초기 연구부터 유통까지 모든 단계를 지원하고, 코로나19와 같은 또 다른 공중보건 위기가 올 경우 향상된 방어 능력을 갖추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영국 역시 지난해 ‘백신개발평가센터’를 설립했습니다. 2개의 첨단 실험실을 기반으로 1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계획인데, 백신 기술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이되는 ‘질병X’에 대응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넥스트 팬데믹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요? 아쉽게도 2024년 백신 관련 정부 사업은 대부분 통폐합되거나 예산이 대폭 삭감돼 연구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mRNA 백신 기술의 국산화를 위해 설립된 ‘신·변종 감염병 mRNA 백신 사업단’을 올 상반기 안에 해제되고, ‘신변종 감염병 대응 플랫폼 핵심기술사업’도 예산이 전년보다 1/4 수준으로 줄었으며, 보건복지부의 백신 기술 사업은 통폐합됐습니다. 백신과 같은 바이오 분야는 장기적인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게다가 중소 벤처 중심의 국내 바이오산업은 정부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끝났지만, mRNA 기술을 비롯한 감염병 관련 기술 개발마저 끝난 건 아닙니다. 넥스트 팬데믹 대비를 위해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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