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 이덕형 선생 묘

031-770-2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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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산82

관심 자원

개요

사천교 갈림길에서 공원묘원이 있는 곳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에 제실이 마련되어 있다. 묘소는 이 제실의 남쪽 청계산 줄기 형제봉 하단에 있다.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 본관은 광주이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민성(李民聖)의 아들이며, 영의정 이산해의 사위이다. 어려서부터 문학에 통달하여 어린 나이로 양사언(楊士彦)과 가까운 사이였다. 또한 어렸을 때 이항복과 막역한 사이로 많은 일화가 알려져 있다. 선조 13년(158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패수까지 올라와 화의를 청하자 이덕형은 단독으로 적진에 들어가 대의로서 그들을 공박하였다. 그 뒤 정주까지 왕을 호종하였고, 청원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명군의 파병을 성취시켰다. 정유재란시 좌찬성에 올랐고,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1601년 행판중추부사로 경상, 전라, 충청, 강원 4도체찰사를 겸하여 전란뒤의 민심수습과 군대의 정비에 노력하였으며 이듬해 영의정이 되었다. 한때 영중추부사로 한직에 있다가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광해군 5년(1613)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삭직(削職)되었고 이 때 양근에 내려와 국사의 그릇됨을 상소하며 세월을 보내다 53세로 병사하였다. 인조 때 복관되었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신도비(높이 356㎝, 폭 110㎝, 두께 42㎝)는 효종 4년(1653)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조경(趙絅)이 찬했으며, 글씨는 오시수(吳始壽)가, 전자(篆字)는 정규상(鄭奎祥)이 썼다. 신도비는 장방형 비좌와 이수를 갖춘 형태이다. 귀부는 용과 괴운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현재 비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전각 내에 세워져 있다. 신도비에서 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영정각은 1977년에 문중에서 건립한 것으로, 홍살문과 경중문(敬重門), 영정각(影幀閣)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정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내부에는 이덕형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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